[한구현 칼럼] 박정희와 푸틴은 쌍둥이인가?

한구현 한류연구소장 / 모스크바국립국제관계대 박사

데스크승인 2012.04.03  11:54:52 한구현 한류연구소장 / 모스크바국립국제관계대 박사 | ...  

  이른바 ’486세대’들은 80년대 많은 대학생들이 그랬듯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심취되어 있었다. 또 어줍잖은 영어실력으로 미군부대에서 카투사로 군복무를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양키고홈’을 외쳤었다. 제대 후에는 운동권을 피하고자 했지만 야학교사를 하며 소위 ‘대자적 노동자’를 양성시키기 위해 노력도 했다. 물론 야학의 탈을 쓰고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본질적으로는 공산주의 혁명을 꿈꾼 것은 필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지난 91년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의 중심인 모스크바로 유학을 결정하였고 소련 유학생 1세대를 이루었다. 모스크바에 처음 도착했을 당시 공포감과 호기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유학을 하면서 혁명의 궁극적 목표이던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의 실상을 알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긴장과 스트레스가 너무 컸던 탓일까. 유학간지 얼마 안 되어 기숙사에서 고열로 몸져 눕게 되었고, 이 사실을 안 기숙사 사감이 의사왕진을 요청했다. 몇 시간도 안 되어 의사와 간호사가 직접 나를 찾아와 진찰한 후 여러 가지 지침사항과 처방전을 내주었다. 처음 받아온 왕진에 황송하여 비용지불을 하려고 하니 의사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소련은 사회주의국가라 모든 의료행위는 무료라고 알려주었다.

그때까지 사회주의 국가의 장점을 발견하기 힘들었던 필자는 사회주의의 위대성을 그때 처음 몸소 실감했다. 미국이나 대한민국 같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극소수의 부유층에만 가능한 의사왕진이 사회주의에서는 일상 시 된다는 것은 분명 사회주의 체제의 우수성이다.

신열에 지친 무거운 몸에 처방전을 손에 쥐고 학교 인근 약국에 갔지만 약이 없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찾아간 약국에도 처방전에 적어준 약이 없었다. 이 날 받은 사회주의의 빛과 그림자에 대한 충격은 클 수 밖에 없었다. 이후 10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할 때 러시아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70년간의 공산주의 체제는 러시아와 러시아인에게 비극적인 유산을 남겨놓은 것이다라고 확신했다.

흔히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혹은 진보진영에서 가장 즐겨 쓰는 언어 중 하나가 바로 ‘인간의 얼굴’일 것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세상’, ‘인간의 얼굴을 한 서울’ 등의 구호는 필자에게 강한 거부감을 준다. ‘자본’이 아니라 ‘인간’에 초점을 맞췄다는 공산주의 종주국에서 필자가 내린 최종 결론은 소비에트에는 ‘인간의 얼굴은 결국 없다’라는 것이었다.

사람의 말을 믿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감시하는 비인간적인 체제가 바로 사회주의이고 공산주의인 것이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한마디로 불신하는 체계 그 자체였다. 필자가 발견한 인간의 얼굴은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된 미국, 일본, 한국 등이었다.

러시아 푸틴 총리가 대통령에 선출되기 전에 이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개발전략에 대해 연구했다는 보도가 있어 주목을 끌었던 적이 있다. 최근에 박정희 전 대통령과 푸틴 총리의 유사성이 많다고 언론에서 비교분석까지 하고 있다. 그 근거로 첫째 권위적인 정부를 이끌었고, 둘째 높은 경제성장을 구가했으며, 셋째 민주화 운동을 억누르고 탄압하는 등의 공통분모를 들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는 언제나 빛과 그림자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필자는 오히려 박정희 전대통령과 푸틴 총리와의 명확한 차이점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푸틴정부가 행한, 그리고 행하고 있는 민주주의 세력과 언론에 대한 탄압은 우리나라 국민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잔인하다. 21세기 자행되는 러시아에서의 언론인, 정치인에 대한 암살이나 테러는 60, 70년대 박정희정부의 인권유린과 민주화 인사에 대한 탄압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푸틴정부의 부정부패와 개인적인 재산축적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다.

러시아에서 경제개발은 국가가 아닌 개인 혹은 집단을 위한 경제개발 이라고 할 정도로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 러시아인의 인식 중에 마피아와 크레믈린을 동일시 할 정도로 국가권력에 대한 불신은 상상을 초월한다. 반면에 박정희정부는 근대화를 위한 어쩔 수 없는 독재였다는 변명이 가능할 정도로 사적 이익을 위한 독재로 규정하기 힘들다.

둘째 고도성장에 대한 유사성은 더욱 확연하게 차이성을 가지고 있다. 박정희 전대통령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다면 푸틴 총리는 유(有)에서 유(有)를 개발했을 뿐이다. 러시아는 세계 1위 광활한 영토와 석유, 천연가스 등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지고 있는 축복받은 나라이다. 현재 러시아는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 세계 1위이지만 천연가스 매장량 또한 1위인 반면 석유매장량은 7위에 불과하다. 전세계 석유매장량 가채연수가 42년인 반면 러시아는 16년 정도에 상대적으로 짧다. 사우디아라비아 석유매장량의 1/3도 안되는 러시아의 오늘을 즐기는 식의 세계최대 석유 생산국이란 것은 황금뇌를 가진 사나이처럼  머리 속에 든 황금을 다 써버리는 형국이다.

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 경우는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전무(全無)의 나라’에서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든 것이다. 즉, 새로운 대한민국을 ‘창조’해 낸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나라를 적어도 산업화 시키고 잘사는 나라의 토대를 만든 지도자이다. 혹자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위대해서 누가 대통령을 했더라도 이 정도의 경제성장은 일으켰다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사실상 객관적 근거가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

원조받던 나라가 원조국이 된 유일한 대한민국은 세계 8대 수출대국,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대변되는 경제적 발전과 번영을 일구었다. 문화적 측면에서 소위 ‘할리우드’로 대변되는 전 세계의 미국화 현상에서 유일한 대항마로 한류(혹은 한국화)가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세계 제의 문화대국은 우연히 얻어진 것이 아니라 박정희 시대의 산업화, 그 이후의 민주주의 꽃을 피운 토대 위에 일궈낸 성과이다.

중동발 ‘재스민혁명’으로 무너지는 독재정권의 추악한 면을 볼 때마다 ‘박정희식 통치’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필자만일까?

                                < 한구현ㆍ한류연구소장 / 모스크바국립국제관계대 박사 >